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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천개(1004)의 입술’ 수국 여신 “누구나 썸 탄다”

도초 수국축제 ‘비밀의 정원’을 찾아서

2023-06-12(월) 05:41
오색찬란한 컬러로 ‘여름 꽃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수국은 뜨거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다. 그래서 수국은 여름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추억 사진을 남기려는 연인과 부부의 발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고규석 기자
[미디어전남 고규석 기자] 신안 도초도에 ‘처녀의 꿈’이 만개했다는 소식이다. 그곳에는 천개의 입술을 가진 여신(女神)들이 산다는데.

‘천개의 입술’을 가진 여신을 만나러 가는 길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거기다 꽃말도 ‘처녀의 꿈’이란다. 어찌 설레지 않으랴.

‘천 개의 입술’을 가진 여신을 만나러 가는 것 자체가 환상이다. 수국여신을 머릿속에 떠올리니 수줍은 듯 다소곳하고 가지런하고 곱다. 함초롬하고 또 탐스럽다.

차분하다, 촉촉하다, 곱다, 흐벅지다. 이런 어휘들이 파노라마 되어 스쳐간다.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찍어낸 일상을 벗어난 하루의 일탈. 설렜다. 11일 아침 이른 시간 가든한 옷차림으로 열대어처럼 헤엄쳐 갔다.

천사대교를 지나 암태 남강 선착장에 도착했다. 철부선에는 벌써 관광버스 네 대가 실려 있다. 도시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쉽지 않을 텐데 의외다. 게다가 수국 축제는 16일부터다.

아직 이른 시긴데 의외로 많은 관광객들이 수국축제를 찾았다. 비금으로 가는 철부선에서 만난 관광객들. /고규석 기자

관광객들은 설렘에 한껏 부푼 라이더가 되어 구름 페달을 밟고 달렸다. 고물에선 뽀얀 갈기가 흩날렸다. 포세이돈이 타는 하얀 말을 보았다.

섬 가까운 곳에선 바닷물에 가려졌던 갯벌의 속살이 드러났다. 그 속살마다 가르마처럼 길이 놓였다. 신비했다.

갈매기의 환호를 받으며 40분 만에 배는 비금 가산에 연착륙했다.

비금에서 도초로 가는 길에는 황금 월계관을 쓴 금계국이 길 양편으로 사열하듯 늘어서 받들어총을 외쳤다. 뭔 일인가 싶어 물으니 장광수 신안군 천일염지원과장이 비금면장시절에 닦아놓은 꽃길이란다.

금계국과 함께 나비 바늘꽃(가우라 꽃)이 바람에 묻지도 않은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는 길을 일러줬다.

멀리 풍차가 돌아가는 이국적인 바다 풍경.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모래사장.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숭어가 뛰어 올랐다. 감탄사가 파도에 휩쓸려 포말로 사라졌다. /고규석 기자

바늘꽃이 일러 준대로 간 길에는 탁 트인 해변이 나타났다. 그 이름도 명사십리다. 완도가 아니고 비금 명사십리 해변이다. 곱디고운 모래는 자연이 빚은 비단이었다.

멀리 풍차가 돌아가는 이국적인 바다 풍경. 태초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모래사장.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숭어가 뛰어 올랐다. 돌고래처럼. 감탄사가 파도에 휩쓸려 포말로 사라졌다.

차를 타고 말처럼 백사장을 달리는 건 더더욱 압권이었다. 말갈기를 흩날리며 활시위를 당기는 동굴벽화 속에 등장하는 고구려 무사가 된 것 같았다. 이색적이고 가슴 뭉클한 체험이었다.

명사십리를 빠져나와 한 굽이를 돌자 피카소에 비견될 만큼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 미술상인 터너 상을 수상한 조각가 ‘안토니오 곰리’의 작품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바다의 미술관’이 품에 안겼다. 두바이 제안을 거절할 만 큼 절경이었다.

‘안토니오 곰리’의 비금도 바다의 미술관을 비롯해 ‘올라퍼 엘리아슨’의 도초 대지의 미술관, ‘마리오보타’와 ‘박은선 작가’의 자은도 인피니또 미술관, ‘야나기 유키노리’의 안좌도 플로팅 뮤지엄 등 세계적인 작가의 뮤지엄이 조성된다고 장유 팀장이 귀띔했다. 이방인의 이름을 구구단 외듯 외는 것이 참 신기했다.

하이킹의 명소로 익히 알려진 ‘하트 해변’은 무릉도원이었다. 물안개가 섬과 섬 사이 오작교를 놓아 신비로움을 연출했다. 마치 신이 내린 한 폭의 산수화였다. /고규석 기자

바다의 미술관을 뒤로 한 채 ‘하누넘’으로. 하이킹의 명소로 익히 알려진 ‘하트 해변’, 기사와 보도사진으로만 보던 꿈에 그리던 하트 해변은 무릉도원이었다. 물안개가 섬과 섬 사이 오작교를 놓아 신비로움을 연출했다. 마치 신이 내린 한 폭의 산수화였다.

이곳에선 나이 드신 어른도 아이가 되는가보다. 비경을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저 많은 나무들과 꽃들은 누가 관리할까 궁금했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연간 2000만원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 400세대 정도 된다는 게 장 유 팀장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비금도에선 밥 먹기가 힘들단다. 그 이유는 태양광 공사가 한창이라서. 인부들이 숙식을 하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란다. 박우량 군수의 군민 100년 먹거리 창출이 소득증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반증이 우회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팽나무의 진녹색의 풍성한 잎 사이로 특유의 오색찬란한 컬러와 파스텔 톤이 짙거나 옅거나 서로 녹아들며 촉촉하게 퍼지는 청량함 때문에 마음이 끌렸다. /고규석 기자

드디어 서남문 대교를 건넜다. 박 군수가 직접 설계하고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팽나무 10리길이 12폭 병풍처럼 펼쳐졌다.

팽나무 우듬지 사이로는 여름빛이 쏟아져 내렸다. 길 어깨를 장식한 ‘니포피아’에 빛이 닿을 때마다 눈이 부실 만큼 찬란한 여름이 드러났다. 팽나무 아래 10리길은 느리게 걷기 딱 좋다. 10개 코스로 나뉜 10리길은 1번과 7번 코스가 가장 아름답다.

강진, 고흥 해남 등지에서 시집온 팽나무들이 740그루다. 저마다 초등학생들처럼 이름표를 달고 ‘앞으로 나란히’하고 서있다.

멀리서 이렇게 옮겨 심었는데 이렇게 활착이 잘 됐을까. 궁금했다. 그 비결은 수용성 비료를 물로 희석시켜 엽수(나무위에서 물 뿌림)한 덕분이라는 장 팀장의 설명이다. 옮겨 심은 첫 해가 가장 중요하단다. 이 작업도 주민들이 직접 물차를 임대해 11월에 하기 때문에 주민은 소득증대로 직결되고 군은 예산을 절감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다는 것이다.

팽나무와 수국의 동거가 환상 그 자체다. 환상의 정원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겠다. 정지용의 시 ‘향수’가 절로 떠올랐다. 차분하면서도 곱고 아늑한 풍경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여서다.

‘접시꽃 당신(도종환 시인)’ 보다 ‘수국 당신’이 훨씬 더 어울린다. 그래서 환상의 정원에 오면 누구나 ‘썸’ 탄다.

꽃송이가 크고 화려한 수국부터 작고 소박한 품종까지 다양하게 피어나 조화로운 멋도 즐길 수 있다. 빛깔도 다채로운 수국 꽃길을 거닐고 싶다면 환상의 정원을 강력 추천한다. /고규석 기자

마이크로 필라 수국을 필두로 산수국 게열, 목수국, 미국 수국, 등수국 등 수국 종만 70여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 가장 호감이 가는 수국은 ‘팝콘 수국’이다. 어쩌면 저리 이름을 닮았을까 웃음이 절로 나와서다.

수국의 색감도 다양했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다. 색색의 작은 꽃봉오리가 모여 풍성함을 더하면서 수국의 화사함이 빛날 때, 나무늘보처럼 느리고 한가로이 걷다보면 누구나 시인이 될 것 같다.

그 이유는 팽나무의 진녹색의 풍성한 잎 사이로 특유의 오색찬란한 컬러와 파스텔 톤이 짙거나 옅거나 서로 녹아들며 촉촉하게 퍼지는 청량함 때문에 마음이 끌렸다. 마치 찻집에 아리따운 여인을 힐끗 보듯이 탐했다. 연분홍 치마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조선 여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 아리따운 모습에 취해 바라보는 기자의 얼굴마저 붉어졌다. ‘썸’ 탄 게 분명했다.

마이크로 필라 수국을 필두로 산수국 게열, 목수국, 미국 수국, 등수국 등 수국 종만 70여종에 달할 만큼 다양하고 색감도 풍부했다. /고규석 기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참 이뿌지요”
그 한마디에 할머니의 순박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네. 너무 예쁘네요”라고 전북 익산에서 왔다는 양소윤(34)씨가 화답한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청초하고 그윽하고 은은한 컬러가 황홀하다. 꽃 속에 꽃이 피어 겹겹이 쌓인 그리움(위화-가짜 꽃을 처음 알았다)을 첨 보았다. 그 농염한 몸짓에 금세 그리움이 폭발할 것만 같다. 그래서 수국 꽃 속에는 그리운 사람이 사는가. 수국,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핸드폰 진동처럼 떨리는 입술을 보았다. 꽃잎에서 소리가 났다.

비탈에 놓인 수국정원은 지금 수국 전성시대다. 수국 천국이다. 어떤 꽃이 달고, 어떤 꽃이 쓴지. 천개의 입술을 가진 수국.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고 흔들리는 눈 맞춤에 설익은 표정들이 떨어져 옷깃을 스쳤다. 한 때 사치로 여겼던 감정들이 파고들며 품에 앵겼다.

특히 꽃송이가 크고 화려한 수국부터 작고 소박한 품종까지 다양하게 피어나 조화로운 멋도 즐길 수 있다. 빛깔도 다채로운 수국 꽃길을 거닐고 싶다면 환상의 정원을 강력 추천한다.

특유의 오색찬란한 컬러로 ‘여름 꽃의 여왕’으로도 불리는 수국은 뜨거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다. 그래서 수국은 여름 감성을 더욱 자극한다. 어제 핀 꽃보다 내일 필 꽃보다 오늘 피어 있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 추억 사진을 남기려는 연인과 부부의 발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돌아오는 길에 어떻게 하면 ‘이렇게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장 팀장은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를 들려줬다. 통상 토목공사를 하고 나서 조경공사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박 군수는 조경공사를 먼저하고 나중에 토목 공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은 일 하기가 편하단다. 웬만한 조경공사는 직원들이 직접 설계 한단다. 주로 경사면에 꽃을 많이 심은 이유에 대해서도 넓어 보이고 실제로 평지보다 더 많이 식재할 수 있다는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발상의 전환이 지금의 신안군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일까. 그 비결은 전폭적인 박 군수의 지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속한 팀 직원만 12명, 신규직원까지 합쳐 녹지 관련만 60명이란다. 직원들의 식견과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 해외견문 비용으로 6억 원의 예산을 세워놓았단다. 박 군수의 미래를 향한 투자 안목이 범상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도초 보광식당에서 간재미 무침으로 식후경. 막걸리 식초의 향미가 아직도 입안에 맴돈다.

영화 자산어보 촬영지. 이곳에선 누구나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고규석 기자

팸 투어 마지막 행선지는 영화 세트장. 자산어보를 펼치고 정약전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곳에선 기웃거리는 사람마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걸렸다. 마루에 걸터앉으면 그대로 한편의 풍경화가 됐다.

발아래 바닷가에선 호기심 많은 새들이 갯벌을 쑤셔 이름 모를 조개를 캐고 갯고랑에 떨어진 물무늬를 주었다.

5시간 남짓. 비금, 도초 단 두 곳만의 투어에도 1004섬을 상상하고 남았다. 박 군수가 늘 주창하는 ‘온리 원’의 의미가 쏜 살로 날아와 가슴 깊숙한 곳에 박혔다. 덧붙여 이곳에서 유난히 많은 염전과 마주쳤다. 염전을 지날 때마다 신안의 할머니들이 ‘구찌’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 오버랩 됐다. 힐링, 먼데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오늘에야 깨우쳤다. / 고규석 편집국장


키워드 : 도초 수국축제 | 박우량 신안군수 | 하트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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